寄稿
四柱學의 歷史와 大家들에 대해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四柱命理學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지 않지만, 천편일률적인 四柱學의 역사나 인물에 대한 평가가 늘 마음에 걸렸으므로 부족한 글 솜씨나마 四柱學의 인물들과 命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해보고자 한다. 사실 四柱學을 조금만 안다 싶으면 아무나 고금의 命人들을 입에 올리기를 마다하지 않고, 마치 運命學의 역사에 통달한 것처럼 위장하는 데에 대해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을 최종 목적은 시중에 싸구려처럼 나도는 ‘易術의 命人들’ 같은 허접한 이야기들 대신 이 학문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옥석(玉石)을 가릴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데 있다.
보통 大家란 학문이나 기예 등 전문분야에서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는 四柱學이나 運命術의 대가들 또한 셀 수 없이 많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학문의 창시나 깊이, 층으로 본다면 역시 四柱學의 본산인 中國人들이 가장 많을 것이고, 日本이나 韓國 등을 위시해서 동아시아 지역이 주가 될 것이다. 먼저 中國의 命人들과 연대별로 그들의 대표적인 命書들을 열거해보면 대강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中國의 名人
▪ 4세기 낙록자(珞祿子)의 소식부(消息賦)
▪ 8세기 唐代 이허중(李虛中)의 이허중명서(李虛中命書)
▪11세기 明代 서자평(徐子平)의 연해자평(淵海子平)
알려지기로는 李虛中이 日干을 기준하여 새로운 四柱學說을 세운 시초로 보고, 袁天綱(원천강), 一行禪士(일행선사), 李泌(이필) 등이 당시에 활약했던 인사들로 전해진다. 이를 바탕으로 정설을 문서화한 이가 徐居易(서거역), 일명 子平이고 徐居易 死後에, 沖虛子가 道洪이란 道僧의 비전을 이어받았는데 徐大升에 의해 淵海子平의 계열(淵海子平, 繼善篇, 通天賦)이 모두 완성되어 비전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수 선생의 ‘子平眞詮리뷰’에서 인용)
▪ 14세기 明代 유기(劉基)의 적천수(滴天髓)
▪ 17세기 靑代 진소암(陳素庵)의 명리약언(命理約言)
▪ 18세기 靑代 심효첨(沈孝瞻)의 자평진전(子平眞詮)
이외에도 만민영(萬民英)의 삼명통회(三命通會)나 장남(張楠)의 명리정종(命理正宗), 임철초(任鐵樵)의 적천수천미(滴天髓闡微), 원수산(袁樹珊)의 명리탐원(命理探原) 등이 명저로 분류되나 위에 적시한 보전(寶典)들과는 차원이 다르고 후대인들의 평가나 인지도에서 약간 떨어진다.
그러다가 근대 20세기에 徐樂吾란 대가가 출현하는 쾌거가 있었다. 그는 命理學의 보서들을 해설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한번에 그친 게 아니라 平生을 통해 가필하고 재차 해석하여 學者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던 것이다. 陳素庵의 적천수집요(滴天髄輯要)를 주석한 적천수징의(滴天髓徵義)를 필두로 구전되어 온 欄江網을 궁통보감(窮通寶鑑)으로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후에 이것을 최종적으로 조화원약평주(造化元鑰評註)로 완성시켰으며, 그의 적천수보주(滴天髓補註)는 서락오 四柱學의 집결판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를 中國 운명철학의 7대 명인에서 제외할 수 없다.
▪ 20세기 民國 徐樂吾의 자평수언(子平粹言)
命人을 구분하는 근거는 간단하고 명백하다. 그것은 모두 이 학문의 신기원(新紀元)을 연 천재적인 역할을 수행한 점에 있다.
1. 珞祿子 - 종래의 서문화된 四柱理論을 年月 기준으로 四柱를 보는 법을 창안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과 사요취선(史要聚選)에 의하면, 기원전 8364년 지황씨(地皇氏)에 의해 干支法이 창안되었고 이때부터 四柱學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원전 3512년경 복희씨(伏羲氏)가 八卦를 창안했으며, 2676년 황제(黃帝)때 河圖洛書가 그 시대 처음으로 書文化되었다. 은(殷)나라 때 36국이 난립하게 되자, 사회의 불안이 가중되는 틈을 타서 干支를 이용하여 점을 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갑골문자(甲骨文字)다. 기원전 1222년경 내사(內史) 벼슬을 한 天文學者 숙복(叔服) 선생이 처음으로 年을 기준한 四柱法을 이론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기원전 221년경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 때 자신을 비방하는 유생(儒生) 464명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고, 수만 권에 달하는 史書·天文·地理,秘傳으로 전해 내려오던 四柱學 관련 책을 모두 불살라 태워버린 분서갱유(焚書坑儒)가 일어났다. 그때가 四柱學의 1차 시련기라고 할 수 있다. 수(隋)나라 때에 이르러 각종 인쇄 매체가 발달하자, 일부 비전과 구전으로 흩어져 전해 내려오던 낡은 책들이 다시 빛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 시대의 저서로는 명리비결(命理秘訣), 명리약언(命理約言), 취자고서(取自古書), 책번취간서(刪繁就簡書), 자해비전(自解秘傳) 등이 있다. 그러다가 AD. 367∼249년경 東周의 珞祿子가 年月을 기준하여 四柱 보는 새로운 학설을 창안했다.
2. 李虛中 - 귀곡자(鬼谷子)가 창시한 納音과 神殺을 위주로 한 命理學의 古法 체계를 세우고, 日干을 기준하여 새로운 四柱學說을 세운 것이 오늘날까지 四柱學의 기본이 되었다.
3. 徐子平 - 李虛中 선생이 연구한 日干을 기준으로 하는 학문적인 바탕 위에 定說을 완벽하게 문서화했다.
4. 劉基(字 伯溫) - 體用을 위시한 四柱學의 복잡한 이론을 정수의 문장으로 모두 완벽하게 담아냈다. 諸葛孔明(제갈공명)과 함께 中國 역사의 2대 천재로 손꼽힌다. (아마도 이수 선생이 가장 영감을 많이 받은 고서로는 ‘滴天髓’가 제일이 아닐까 싶다)
5. 陣素庵 - 그의 적천수화해(滴天髓和解)와 命理約言의 이론은 가장 정연하고 놀랄만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6. 심효첨 - 이허중이 命理學의 기학(氣學) 체계를 집대성했다면, 심효첨은 오행의 이법(理法) 체계를 가장 빈틈없이 설명했다. (이수 선생은 ‘자평진전리뷰’에서 이를 두고 종래의 가장 완벽한 텍스트로 높게 평가)
7. 徐樂吾 - 후대 저서인 滴天髓補註와 造化元鑰評註를 보면 이론이 정교하고 치밀하기로는 당대 제일로 평가된다. 아마도 현대의 四柱學자들은 70% 이상이 徐樂吾 이론의 아류에 속하고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日本의 名人
이제 日本의 運命學 군단을 살펴보겠다. 2002년경 월간중앙에 애스크퓨처의 이수 대표가 쓴 命理學 칼럼을 보면 日本을 대표하는 四柱學의 3대 명인으로 아베오야마(阿部泰山)와 다가기죠(高木乘), 그리고 사토료쿠류(佐藤六龍)를 들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견해를 달리 한다. 中國 명징파(明澄派)의 13대 장문인 장야오윈(張耀文)이 佐藤六龍에게 전수한 다양한 지식은 비록 日本의 五術 체계를 확립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中國에서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의 오리지낼러티(원류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가기죠(高木乘) 또한 日本 이학회의 시조로 日本 四柱學界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보통의 대가 중 하나일 뿐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대가로 꼽기엔 부적합하다. 그의 저서는 국내에도 몇 종 소개되었는데 특별한 업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부태산(阿部泰山)은 전통의 四柱學을 혁신시킨 學者로 평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日干만을 사용해 왔으나, 그는 月支를 기준으로 한 二干法을 정립했다. 이것은 대담하고 훌륭한 착상(着想)이므로 四柱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국내 易術界는 직간접적으로 이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은 學人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0세기 日本 아부태산(阿部泰山)의 사주추명전집(四柱推命全集)
韓國의 名人
四柱學이 韓國과 日本에 전파된 시기는 中國의 宋代로 비슷한 시점이다. 그러나 해방을 전후해서는 日本이 더욱 기민하게 四柱學의 최신 관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阿部泰山(아부태산)을 정점으로 해서 꽃을 피웠다. 월간중앙에 연재되었던 이수 선생의 命理學 칼럼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아베 오야마의 등장으로 日本 四柱學의 수준은 등급이 달라졌다. 메이지(明治)대학 출신으로 中日戰爭때 종군기자로 베이징(北京)에 주재하면서 四柱學의 방대한 자료와 문헌 등을 입수하여 日本으로 가져가 종래의 학설에서 한 단계 진보된 지식체계를 선보이며 기존의 四柱學계를 강타하였다. 이후 복(卜)의 분야인 육임신과에 관련한 저작을 무릉출판사에서 10여 권 가까이 선보이면서 命理뿐 아니라 六壬에 관한 아베의 저작은 역의 본고장에서도 감히 그 경계를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였다. 국내에서 四柱學의 입문서로 가장 많이 본다는 ‘四柱精說’은 바로 아베 오야마의 이론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최영철(崔英哲·73) 변호사가 1962년에 백영관(白靈觀)이라는 필명(筆名)으로 펴낸 이 책은 현재까지 30판이 넘게 출판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국내에서 나온 제대로 된 四柱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四柱精說의 서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中國에 비해 약 1,000년 정도의 運命學상의 후진에 봉착하고 있으며 이는 아마 淵海子平 및 命理正宗의 조잡한 설명 방식에 의해 四柱推命學을 난삽(難澁)한 것으로 오해한 탓일 것이다. 하루속히 이 후진성에서 탈피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일단 유보한다. 어쨌든 이때 이미 韓·中·日 三國 중에서 우리가 가장 뒤져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다음으로 근래 韓國 四柱學界의 대가인 도계(陶溪) 박재완(朴在琓· 1903~92)의 ‘명리요강’(命理要綱)과 ‘명리사전’(命理事典)이 있다. 시중에 나온 四柱學 교재 중 가장 앞서가는 命理 이론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은 모두 1980년대까지 활동했던 中國의 웨이치안리(韋千里)가 저술한 ‘명학강의’(命學講義)와 ‘팔자제요’(八字提要)의 번역본이다. 웨이치안리는 장제스(蔣介石)가 총애하여 대만 정부의 국사(國師)대접을 받은 세계적 術士로 후에 주로 홍콩에서 활동하였는데, 국내의 저명한 인사들도 직접 그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는 하였다. 고 이석영 선생의 ‘사주첩경’(四柱捷徑)만이 순수 우리의 四柱學 교재로 온전히 보존되고 있으나, 아쉽다면 이는 일종의 임상서(case study)이며 엄밀히 따져 학문적 원리를 규명한 책은 아니다. 韓國의 命理 대가들인 이석영(李錫暎·1920~83)·朴在琓·박제현(朴齋顯·1935~ 2000) 세 분 중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체계를 구축하거나 우리의 학문을 세계시장에 전파하지 못한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 마디로 韓國에는 세계적 術士가 없었다. 대만에서는 웨이치안리 이후, 오준민(吳俊民)의 ‘명리신론’(命理新論)·‘화제관주’(花堤館主)의 ‘명학신의’(命學新義)와 허젠중(何建忠) 선생의 ‘팔자심리학’(八字心理學) 등의 양서들 외에도 엄청난 저작물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이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四柱學의 재해석을 통한 진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日本은 어떠한가. 이미 아베 오야마이라는 걸출한 術士의 탄생 이래 또 한 명의 세계적 術士를 보유하게 되었다. 사토 료쿠류(佐藤六龍)이라는 日本이 자랑하는 四柱學의 巨頭다. 사토 료쿠류은 中國의 명징파(明澄派)를 신봉하여 明澄派 13대 장문인 장야오윈(張耀文)의 제자가 되어 스승을 日本으로 모셔갔다. 장야오윈은 明澄派의 秘法을 강호에 널리 퍼뜨려 한때 中國 易學界로부터 사문(師門)의 비전(秘傳)을 함부로 팔아먹는 자라고 크게 비판 받기도 하였다. 대만의 현저한 術士들이 대거 日本으로 건너가 귀화(歸化)하여 활동하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장야오윈과 사토 료쿠류이 공동으로 저술한 ‘자평일득’(子平一得)은 근래 대만 易術界의 대스승으로 추앙 받는 쉬러우(徐樂吾)의 이론체계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놀라운 경지를 구현하고 있다. 어쩌면 四柱命理 분야에서는 日本이 가장 앞서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베 오야마와 사토 료쿠류이 易術界의 本土를 두 번 폭격한 셈이다. 이러한 지금의 판도에 너무나 둔감한 것이 또한 우리 易術界의 현실이다. 이 계통의 학습자들과 後學들은 더욱 분발하여 동양 豫測術의 근간인 四柱學의 입지를 크게 올려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크게 실망할 일이 아니다. 필자는 감히 확신한다. 현장 術士의 실력을 현상과 미래의 추론 적중률로 평가한다면 우리가 크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학문적인 지식 기반에서도 2003년 현 시점에서 우리가 보유한 지식체계가 앞서나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 글을 영국에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전에 이수라는 命理學者를 본 적고 들어본 적도 없었으므로 너무 나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1999년경에 그의 개인 홈페이지를 방문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에 꽤 참신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다지 높게 평가하진 못했던 것이고 곧 잊었다. 이것이 후에 애스크퓨처닷컴으로 탈바꿈되는 모체가 되었던 것 같은데 생활에 쫓기느라 그만 무관심하게 넘겼던 것이다. 아마도 命理學을 공부하거나 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수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 특별한 감흥이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해 전 원광대 조용헌 교수의 四柱命理學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 보면 中國의 韋千理와 韓國 四柱學의 3대 명인으로 이석영(李錫暎·1920~83), 박재완(朴在琓· 1903~92), 박제현(朴齋顯·1935~ 2000)을 들고 있다. 나는 이 중 두 분을 생전에 뵌 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호기심을 충족하지 못해 대만의 하건충(何建忠)이나 오준민(吳俊民)의 저서를 구해 읽어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易學書 출판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무릉출판유한공사(武陵出版有限公司)의 八字 계열 저자들 중 생존한 분들을 어렵게 탐문하여 직접 상담을 요청하기를 수회 경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十中八九는 실망스러워 현직에서 은퇴한 후에는 그저 고인들의 양서를 때때로 탐독하며 소일했다. 그러던 중 이수 선생의 칼럼을 보게 되었는데, 특히 “韓國의 命理 대가들인 이석영(李錫暎·1920~83)·박재완·박제현(朴齋顯·1935~ 2000) 세 분 중 어느 누구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체계를 구축하거나 우리의 학문을 세계시장에 전파하지 못한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 마디로 韓國에는 세계적 術士가 없었다.” 라는 문장은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내가 늘 안타깝게 생각해온 바와 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대체 이 젊은 친구가 얼마나 자신이 있기에 이토록 건방을 떠는 건가” 라는 생각과 “뭔가 있긴 있는 건가” 하는 두 가지 생각이 오래토록 가시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을 탐색했더니 애퓨 사이트는 너무 복잡하고 무질서한 느낌만 들어 정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최신명리조류’라는 글로 운영자 앞으로 메일을 한 통 보낸 적이 있는데 그 글이 애퓨 게시판에 오른 것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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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命理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상기의 命書들을 놓치지 말고 읽어보길 권한다. 이중 消息賦와 李虛中命書는 자료를 구하기가 수월치 않을 것 같아 미력하지만 필자의 힘이 닿는 대로 해석하는 수준에서 조금씩 글을 올려볼 예정이다.
易學徒, 金尊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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