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신생재(食神生財)
요즘 여러분들이 십신(十神)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食神은 財星을 生하지요?
그래서 사주를 풀이할때 장사를 한다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食神生財의 구조를 잘 나타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六親과 十神공부를 하는 단계까지 오시게 되니 사주명리학에서 사용하는 전문 술어들을 가지고
앞으로 재미있는 얘기를 해드릴게 많을 거 같습니다.
오늘은 명리 공부하시는데 도움이 될까하여 전형적인 食神生財형 스타일의 사람과 관련한이야기를 하나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食神은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먹이는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맛있게 먹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흐믓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팔자에 식신이 발달돼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 먹이는 것을 그자체로 즐기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돈 버는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식신도 세 가지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적선형(積善)이고, 두번째는 기분파(기마이)형이며, 셋째는 뇌물형입니다.
적선은 인정이 발동해서 나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행위가 적선입니다.
기분파형은 다분히 낭만적인 스타일입니다.
마음에 들고 기분에 맞으면 돈을 쓰는 기질은 기분파형이 좋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씀씀이가 헤픈 낭비형 타입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베푸는 기질은 기본적으로 갖춘 셈입니다.
그에반해 뇌물은 대가를 계산하고 베푸는 것입니다.
공짜가 아닙니다.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방을 유혹하는 전략입니다.
그렇지만 이 뇌물 주는 것도 밑바탕에는 베푸는 기질이 깔려 있어야만 실천이 가능합니다.
배짱이 있어야 한다 이거지요.
아주 인색하고 소심한 사람은 뇌물 주는 것도 아까워합니다.
뇌물은 도덕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재물 그 자체는 도덕을 초월하는 속성을 갖습니다.
왜정 때 경북 영천에서 문명기(文明琦, 1878~1968)라는 이름을 가진 어물(魚物) 장수가 있었습니다.
경주, 포항, 영덕 등지에서 나오는 생선을 사다가 영천시장에 내다 파는 장수였습니다.
문명기는 묘한 스타일이었습니다.
당시 영천 경찰서장은 일본인이었는데, 이 영천 서장의 집 대문에다가 청어를 한 두름씩 몰래 갖다놓곤 했습니다.
한 두름이라고 하면 20마리입니다.
일본 사람은 고등어를 특히 좋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고등어를 '사바'라고 합니다.
왜정 때 일본 사람들에게 부탁을 할 때 고등어를 몇 마리 갖다주면 매끄러운 기름칠이 됐다고 전해집니다.
'사바사바'는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청어는 고등어보다 한 급 위의 고급 생선입니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 아시죠?
요즘은 꽁치를 말려서 만듭니다만 윈래 옛날에는 청어를 말려서 과메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청어가 귀해져서 잡히지를 않으니 언젠가부터 대체용으로 꽁치를 말려서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
문명기는 한 달에 두세 번씩 경찰서장 집 대문 고리에다가 청어 꾸러미를 걸어놓고 사라지곤 합니다.
이걸 몇 번 받아먹던 일본인 서장은 '누가 이 청어를 갖다놓고 사라지는가.' 궁금했습니다.
마침내 그 주인공이 조선인 문명기라는 생선 장수임을 알게 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내 집에다가 청어를 매번 갖다놓았느냐?"
"저는 영천시장에서 생선을 팔아 재미를 봤습니다.
다른 지역 시장에서 생선을 팔 때는 치안이 좋지 않아서 깡패들에게 세금을 많이 뜯겼는데, 영천은 치안이 확보돼 뜯기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천 경찰서장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깡패들에게 뜯기지 않은 만큼을 서장님께 현물로 갖다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습니다.
서장 입장에서도 치안이 확보돼 장사하기 좋아졌다고 하는 말은 기분 나쁜 말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문명기라는 생선 장수의 얼굴 생김새도 두툼하게 돈이 붙어 보였고,
조리 있게 말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든 서장은 도와줄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거 싹수 있는 놈이네!' 그다음에 나오는 말은 "너 민원 사항이 뭐냐?"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어물장사를 해서 어느 정도 밑천을 모았습니다.
이 밑천을 갖고 종이장사로 전환을 해보고 싶습니다.
종이장사를 하려면 신용이 필요합니다.
신용이 있어야 제가 외상으로 많은 종이를 매입할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종이를 매입해 놓아야만 이문이 크게 남는데, 외상 매입을 하려면 제 신원을 누군가 보증해줘야만 그게 가능합니다."
"그래 내가 자네 보증을 해줄께."
1907년 영천 경찰서장의 보증을 등에 업고 문명기는 자기 자본의 열배나 되는 금액의 종이를 외상으로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경북 영덕에서 청송 가는 길에 지품면(知品面)이 있었는데, 이 지품면에는 속곡, 눌곡이라는 유명한 한지 생산지가 있었습니다.
한지 원료인 닥나무가 많았던 것입니다.
문명기는 한지를 몽땅 구입해놓고 팔리기를 기다렸지만, 한지를 구입해가던 중국 상인들이 태클을 걸었습니다.
"시세의 반값이 아니면 안 사겠다"고 중국 상인들이 버틴 것입니다.
이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문명기는 세게 나갔습니다.
"반값에는 절대 안 팔겠다. 차라리 불에 태워버리겠다." 실제로 불을 피워놓고 한지 다발을 던지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고
중국 상인들은 문명기의 말이 엄포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제대로 가격 쳐줄게", "아니야, 나 너히들 하는 행동에 열 받아서 장사고 뭐고 다 태워버릴 거야",
"부탁이야. 팔아줘", "그렇다면 따따블로 값을 쳐줘."
이렇게 해서 문명기는 정상 가격의 몇 배를 받고 자신이 거의 독점하고 있던 한지를 중국인에게 팔았습니다.
떼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문명기는 제지업에서 번 돈을 갖고 1932년 금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광산을 인수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문명기는 순금으로 된 명함을 두 장 만들었습니다.
명함 전체가 순금이었으니 명함 한 장이 50돈 무게는 나가는 명품 명함이었습니다.
경성의 총독부를 찾아간 문명기는 총독 비서에게 순금으로 제작된 자기 명함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명함 한 장을 비서에게 더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거는 총독에게 보여드려라. 문명기라는 사람이 면회 신청한다고."
금덩어리로 만든 명함을 처음 봤으므로, 총독도 면회를 받았습니다.
"용건이 뭐냐?", "내가 천황폐하의 은덕으로 돈을 벌게 됐다. 그 보답으로 천황에게 비행기를 헌납하려고 한다. 언제까지 하겠다."
총독으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조선 총독은 일본 천황에게 문명기의 비행기 자진 헌납 사실을 보고하게 됩니다.
이 총독은 6대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였습니다.
그러나 헌납 시일이 돼도 비행기는 오지 않았습니다.
"왜 비행기가 안 오느냐?"
"금광이 안 팔려서 그런다. 금광만 팔리면 바로 비행기 헌납하겠다."
천황에게 한 약속을 어길지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애가 탄 우가키 총독은 문명기의 금광을 팔리게 하려고 자기가 동분서주했습니다.
마침내 당시 일본의 전기 재벌인 노구치에게 이 건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노구치는 수풍 발전소를 비롯해 장진강, 부전강 발전소를 갖고 있던 일본의 재벌이었습니다.
노구치도 우가키에게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문명기의 금광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매입해줬습니다.
당시 금액으로 12만원 이었다고 합니다.
문명기는 이 돈으로 10만원을 떼어 비행기 값으로 헌납했고, 나머지는 자기가 챙겼습니다.
물론 문명기로서는 비행기 헌납하고도 남는 장사였다고 전해집니다.
해방 후 문명기는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고, 현재는 친일파 명단에 올라 있는 문제적인 인물입니다.
친일파라는 점은 비판받아야 맞지만, 그가 큰 재물을 갖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서장에게 갖다준 청어는 적선이었고, 한지를 장작불에 던지는 배짱은 기마이에 해당하며,
순금 명함은 뇌물로 분류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 삼위일체를 종합해보면, 문명기는 식신생재의 팔자였음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사주에 食神生財의 구조를 하고 있으면 장사를 해도 일류 장사꾼이 되고, 사업을 해도 큰 사업을 해서 재산을 모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