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합과 삼합. 책에 보면 방합의 힘이 훨씬 강력하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만 이해해선 안 됩니다. 지난 편에 신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방합과 삼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방합은 주로 가족합으로 표현 됩니다. 따라서 궂은 일에 주로 모입니다. 반면 삼합은 틈만 나면 같이 고스톱 치고자 하는 무리입니다. 말하자면 사회활동의 방향성입니다.
방합의 힘이 강하다고 한 이유는 지난 시대가 농경사회, 대가족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꿈을 따로 꾸며 살아갑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활동을 포기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오늘날에 있어서 방합은 그다지 고려할 대상이 아닙니다. 가령 원국에 인묘와 신이 있다고 할 때 운에서 진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묘진으로서 가능할지, 진이 신과 합을 해 신자진으로 가능할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당연히 신자진의 운동이 먼저 입니다.
그럼 방합은 전혀 의미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오행의 대세를 따질 때는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외에는 거의 쓸 데가 없습니다.
충에 대해서는 한번 언급했습니다. 충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고요. 그걸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가령 절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옆집 아저씨는 절구 방망이가 없고 나는 있습니다. 해서 나는 평소 쌀을 찧어서 맛있는 떡을 잘해 먹었습니다. 하지만 옆집 아저씨는 내가 먹는 걸 구경만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어느날 절구 방망이가 부러졌습니다. 옆집 아저씨는 원래 방망이가 없으니 부러질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겠지만 나는 너무나 슬픕니다. 이제 맛있는 떡을 더 이상 해 먹을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충입니다. 사주에 충이 있으면 역동적이고 유능하다고 지난번에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것으로 인해 자빠지더라도 크게 자빠지는 법입니다. 위의 예에서도 보았듯 충이 가지는 궁극의 의미는 어쨌든 흉입니다. 그래서 고전에 충을 나쁜 것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갈 때 가더라도 한번 떠보자라는 마인드가 대세이므로 결코 나쁘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충이 없는 팔자가 촛불이라면 충이 있는 팔자는 용접가스의 불입니다. 그래서 강렬한 불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 충이 있으면 대체로 수명이 짧은 법입니다.
운에서 충을 만나는 경우의 요약입니다.
1. 원래 無였다면 有로 전환. 그 반대도 성립. 약간의 有였다면 가득 채워지는 有.
2. 젊어서 만나는 충은 발동의 의미, 늙어서 만나는 충은 훼손의 의미.
3. 보통 사람들은 충이 올 때 크게 도약. 반면 잘 나가던 사람들은 삭감,손실.
4. 묵은 문제가 해소 되기도 합니다.
5. 辰戌丑未 즉, 입묘지가 충되면 개고작용이 일어납니다.
방합이 제대로 갖춰져 있으면 끈끈하고 오행 대세가 있는 것이므로 충의 의미가 약해집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삶을 크게 역동적으로 바꿔놓지는 못합니다.
[출처] [공유] 박청화의 강의 노트 10 합충|작성자 antim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