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님

사주 카페 道慧 (지혜에 이르는길) - 四柱學 三代 텍스트

Fortune Ked 2019. 6. 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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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四柱學 三代 텍스트, “子平眞詮 滴天髓 欄江網”

 

 

 

근세 徐樂吾 大師는 四柱學의 3대 寶書를 모두 解說하는 偉業을 세웠다. 3대 텍스트를 관통하는 일관적인 이론 체계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體用의 명확한 분별이 선결요건이 된다. 徐樂吾는 ‘滴天髓補註’의 體用論, “道有體用. 不可以一端論也. 要在扶之抑之得其宜”라는 조목에서 이르기를 『요즈음 인사들이 體用 두 글자를 항상 혼동하는 일이 많은 데, 아직도 종래의 命書 중에 제대로 판별을 가한 일이 없다』고 一喝(일갈)한 바 있다.

 

‘滴天髓補柱’ 券三에 徐樂吾 이르길, 『무릇 用에는 賓主(빈주: 손님과 주인)가 있다. 體에도 마찬가지로 賓主가 있으므로, 日柱는 體의 體, 月令은 體의 用, 用神은 用의 體, 喜神은 用의 用이다』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徐樂吾의 진면목이고, 그 스스로도 古書에 명백치 않았던 이론을 확실히 판별했다고 자부한 중요 대목이다.

 

내가 최근에 3대 텍스트를 모두 정리해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는데, 徐樂吾 선생의 賓主論(빈주론)에서 보다 진전된 體用의 판별법이 시급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任鐵樵의 ‘滴天髓闡微’ 이후 ‘滴天髓補註’, 그리고 現代에 이르기 까지, 扶抑이 중심 되는 이론체계는 賓主論(빈주론)으로 무리 없이 완성된다.

 

그러나 沈孝瞻의 '子平眞詮'은 賓主論(빈주론)에서 구분한 『日柱는 體의 體, 月令은 體의 用』의 차원이 아닌, 『月令이 體의 體, 相神은 體의 用』이 되는 관법을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徐樂吾가 評註에서 『用의 用이 되는 喜神』과 『體의 用이 되는 相神』을 동일시하는 혼동을 수차 범했으므로, 이를 그대로 무분별하게 수용한 後學들은 온전한 ‘子平眞詮’의 학습이 어렵게 되었다.

 

格局이 體(중심)가 되는 ‘子平眞詮’의 관법은 일단 用神(格局)과 用神의 변화, 相神과의 관계로 四柱體의 成敗(成格과 破格)와 高低가 정해진다. 이것이 바로 命式을 판단하는 첫 번째 과정이다. 다음으로 調喉를 살피는 데, 欄江網의 이론 체계는 調候用神을 『體의 用과 用의 體』로 운용하는 범주를 수렴한다. 體의 用이란 命式 원국에서 調候의 成格을 論하는 것이고, 用의 體란 大運 상에서 調候의 成格을 論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이와 같이 ‘子平眞詮’의 格局이 命式 원국 자체에 국한되는 틀(體의 體用: frame)의 개념이라면, ‘欄江網’의 調候는 때(體의 用과 用의 體: time)의 개념으로 시간의 변수가 개입된다. 子平學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는 ‘滴天髓’로 이것은 칸(用의 體, 用의 用: space)의 단계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滴天髓’는 사물의 變化 이치를 기본적으로 扶抑 체계에 근거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상에서 八字를 판독하는 일종의 看命(간명) 순서는 ‘子平眞詮’, ‘欄江網’, ‘滴天髓’ 順으로 전개됨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命式」, 「命式과 大運」, 「命式과 大運, 歲運」을 ‘格局’, ‘調候’, ‘扶抑’ 順으로 해독해 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를 모르고 하나의 이론에 얽매이면 평생의 학습이 무위로 끝나기 십상이므로, 무수한 命理家들이 才氣와 時節을 한탄하였다.

 

古書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면 ‘滴天髓’를 들 수 있다. 이것은 體와 用을 모두 포괄하는 광의의 奧義(오의)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徐樂吾가 ‘滴天髓徵義’에서 ‘滴天髓補註’로 거듭 숙고한 바는 ‘滴天髓’ 자체의 내용만으로도 體用의 분별이 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子平眞詮’을 읽고 ‘滴天髓’를 학습하라고 한 바는 매우 적절한 교훈이다.

 

다만 그가 ‘造化元鑰(조화원약)’ 評註를 집필하기까지 ‘欄江網’의 정체성과 위치를 분명히 해두지 못한 점, 그리고 ‘子平眞詮’ 評註를 “用의 體와 用의 用”의 영역인 扶抑 체계로 확장시켜 전개한 것은 後學들의 혼동을 야기한 아쉬움이 있는 대목이다. 아마도 ‘子平眞詮’이나 ‘欄江網’이 다루는 陰陽의 極性(polarity) 부문이 단순한 五行 生剋制化의 차원을 넘는 범주임을 인식했으므로 후에 상호보완적인 수평적 지위로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가령 丙火가 甲木을 生하는 十干論 기초의 영역이나, 子月의 寒氣는 오히려 木을 傷하게 하는 寒暖燥濕의 논리로 학습이 진전되면 이 같은 영역을 일종의 수평적 各論으로 두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를 體用의 면밀한 분별 선상에서 핸들링하게 되면 수직적인 학습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八字命理의 학문적 원칙 기반이 되는 것이다.

 

徐樂吾의 ‘滴天髓補註’는 필연적으로 이른바 ‘運의 喜忌’를 살피는 行運法의 영역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정밀하지는 못하다. 命式을 읽고, 大運을 읽고, 歲運을 읽는 방식을 모두 扶抑 체계로 표준화했으므로 그 자신도 調候用神의 바른 적용 원칙을 정하지 못했다. 까닭에 많은 인사들이 ‘欄江網’을 부정해버리거나, 혹은 扶抑用神으로 운용해야 할 매년의 成敗를 調候用神으로 혼용하는 愚(우)를 대수롭지 않게 범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筆者가 아직도 이러한 학문적 원칙이나 경계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命理學家를 보지 못했다. 韓中日, 三國을 통틀어도 이를 명쾌하게 논단한 저술을 찾아보지 못했는데 이제야말로 舊態(구태)를 답습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命理學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적어도 命理學만큼은 학문적 事大主義의 틀을 벗어나, 韓國이 선진 命理를 이끄는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命理의 世界는 古書의 완벽한 이해뿐만 아니라, 이에 더하여 고급 지식과 스킬 등을 겸해야만 八字術 실전에서 통하는 바가 있으므로 斯學(사학)의 난해함은 재삼 거론할 바가 아니다. 後學들은 더욱 분발해서 子平의 신기원을 열어야 하고, 韓國 命理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도록 源流와 차별성을 확보해 나가기 바란다.

 

 


乙酉

李修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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